
안녕하세요 혼자비행 입니다.
2024년 1월 1일, 새해의 시작과 함께 제 삶은 '직장암 치료'라는 거대한 투병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남들은 새로운 희망과 계획을 품고 맞이하는 새해 첫날이었지만, 제게는 암과 싸워내야 하는 눈물겨운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겨우 한 달을 버티며 방사선 치료를 이어갔지만, 연세 드신 아버지께 암 환자인 자식의 아픈 모습을 매일 보여드리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커다란 죄송함이자 무게감으로 남았습니다. 홀로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방사선 치료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이어질 항암 치료와 정기적인 진료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대학병원과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대학병원 근처,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급한 결정
치료 일정은 하루하루 팽팽하게 죄어오고 있었고, 제게는 느긋하게 집을 알아보거나 좋은 조건을 따져볼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서울 대학병원 오가는 길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무작정 병원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구한 거처가 마음에 쏙 들 리가 없었습니다. 제 주머니 사정과 다급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작은 원룸 하나뿐이었습니다. 햇빛이 잘 드는지, 수압은 좋은지, 주변 환경은 정돈되어 있는지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당장 이어질 병원 방문과 치료를 감당하려면, 찬찬히 집을 고를 선택권조차 제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허겁지겁 그 작은 방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삶의 흔적을 버려야 했던 1월 6일의 겨울 이사
치료가 시작되고 불과 며칠 뒤인 2024년 1월 6일, 유난히도 바람이 매섭게 불던 한겨울에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한겨울의 맹추위 속에서 이사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부딪힌 난관은 바로 '짐'이었습니다. 원래 살던 집에 둔 손때 묻은 물건들과 내 삶의 흔적들이 담긴 짐들을 그 작은 원룸에 모두 들여놓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가지고 있던 가구와 집기, 익숙했던 소지품들을 대부분 버려야만 했습니다. 수년간 내 곁을 지키며 익숙함을 주었던 물건들을 대형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면서, 마치 제 삶의 입지와 영역마저 한 평 한 평 깎여 나가는 듯한 서글픔이 밀려왔습니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암이라는 큰 병을 얻고 나니 내 몸 하나 누일 공간조차 이렇게 급격하게 좁아진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제대로 된 이삿짐을 차릴 겨를도 없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챙겨 서둘러 원룸으로 향했습니다.
방음조차 되지 않는 좁은 방, 귓가를 울리는 오토바이 소리
그러나 급하게 들어간 원룸에서의 생활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습니다. 이사를 마치고 지친 몸을 누인 첫날 밤부터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소음'이었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집 사람의 작은 말소리나 TV 소리까지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골목길을 향해 난 창문 틈으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끊임없이 들이쳤습니다. 암 치료 시작 직후라 몸은 극도로 피로하고 신경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는데, 귓가를 찢는 듯한 오토바이 소리와 외부 소음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는 것조차 너무나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할 방이, 오히려 또 다른 스트레스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창문으로 새어드는 한기와 외로운 투병
소음 못지않게 저를 괴롭힌 것은 한겨울의 '추위'였습니다. 1월의 서슬 퍼런 냉기는 낡은 창문 틈새로 사정없이 들이쳤습니다. 보일러를 틀어도 온기는 금세 빠져나갔고, 방 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껴입고 패딩을 걸쳐야 할 만큼 공기가 차가웠습니다.
암 환자에게 체온 유지와 숙면은 무엇보다 소중한 치료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얇은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창밖에서 불어오는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고 있노라면 서러움이 눈물처럼 울컥 터져 나오곤 했습니다. 2024년 새해 복을 빌던 시기에 '어쩌다 내 삶이 이렇게까지 벼랑 끝으로 몰렸을까', '몸도 아픈데 왜 이런 환경에서까지 버텨야 할까' 하는 부질없는 질문들이 밤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홀로서기
모든 것이 불편하고, 원망스럽고, 서러운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불평을 늘어놓거나 좌절하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대학병원에서의 치료를 받아내야 했고, 이 악물고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시끄럽게 밤을 깨우고, 틈새로 찬 바람이 들어오는 좁디좁은 원룸이지만, 당장 제가 몸을 누이고 병원을 오갈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 열악함조차도 결국 내가 암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기 위해 견뎌내야 할 투병 과정의 일부라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찬 바닥에 이불을 고쳐 덮으며, 저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환경은 열악하지만, 이 작은 방에서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노라고. 그렇게 저는 1월의 춥고 외로운 원룸에서, 진짜 홀로서기와 치료를 위한 새로운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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