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활.투병일기

대학병원 근처 단칸 원룸에서의 투병, 손끝의 전기 스파크와 멈춰버린 사회생활

안녕하세요 혼자비행 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던 2024년 1월, 좁고 열악한 단칸 원룸으로 이사한 이후 제 삶은 온전히 매일의 고통과 버텨냄으로 채워졌습니다. 방음도 되지 않고 외풍이 몰아치는 그 방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저를 절망스럽게 했던 것은 암 치료의 시작과 함께 제 삶의 모든 사회생활이 단 한 순간에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암 치료의 시작, 그리고 사회생활의 완전한 단절

직장암 판정을 받고 본격적인 치료에 돌입하면서, 그동안 평생 성실하게 일하며 지탱해 왔던 저의 사회적 삶은 송두리째 멈춰 섰습니다. 매일 출근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하던 일상은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암이라는 거대한 병마는 내게 사회적 지위나 역할 따위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수술을 앞두고 암세포를 줄여야 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사회생활은커녕 내 몸 하나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직장에도, 사회에도 더 이상 속해 있지 못한 채 오롯이 병원과 좁은 원룸이라는 고립된 세계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열심히 쌓아온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백수가 된 것보다 더 처참한 것은, 사회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그 막막한 소외감이었습니다.

짧아진 치료 기간, 그러나 더욱 강력해진 고통

과거와 달리 요즘은 의학 기술이 좋아져서 방사선 치료 기간 자체가 몇 달씩 길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짧은 기간 안에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줄여야 했기에 치료의 강도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저는 매일같이 병원을 오가며 그 독한 방사선 치료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습니다. 치료 횟수는 줄었을지 몰라도, 그 강도가 남긴 후폭풍은 이미 무너진 제 일상을 더욱 철저하게 짓밟았습니다.

손끝을 찌르는 전기 스파크와 쇠붙이의 고통

강력한 방사선 치료의 여파는 뜻밖에도 제 손끝에서부터 나타났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손끝에서 짜릿한 전기 스파크 같은 통증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큰 고역이 되었습니다.

차가운 쇠붙이나 금속 성분의 물건을 만질 때마다 손끝을 전기가 관통하는 듯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습니다. 문고리를 잡거나 도구를 집어 들 때마다 전해지는 찌릿한 충격에 깜짝 놀라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집 안에서도, 외출할 때도 항상 장갑을 끼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사소한 물건 하나를 만지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저를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프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화장실의 시간과 극심한 배변 고통

손끝의 통증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방사선 치료가 몸속 깊은 곳을 향하면서 겪어야 했던 신체적 부작용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특히 화장실을 갈 때마다 겪는 고통은 사람을 완전히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앉을 때마다 너무나 아프고 괴로워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곤 했습니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변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진땀을 흘리며 주저앉기 일쑤였습니다. 변은 나오지 않고, 아랫배와 항주변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와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저에게는 하루 중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으로 이 고통을 매일 홀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쉼 없이 연달아 찾아오는 부작용과 죽음이라는 단어

손끝의 전기 스파크, 쇠붙이를 만질 수 없는 서글픔, 그리고 화장실에서의 끔찍한 고통까지. 암 환자에게 찾아오는 부작용은 한 가지만 지나가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다음 고통이 연달아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여기에 사회생활마저 완전히 끊겨버려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는 상실감이 겹치면서, 정신적으로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차라리 이대로 눈을 감고 싶다거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통증과 외로움, 무력감이 겹쳐오는 밤이면 죽고 싶은 생각마저 스쳐 지나가며 스스로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살기 위해 눈물을 닦아내며

살면서 이렇게까지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또 있었을까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한 발짝 물러나, 좁고 추운 원룸 구석에 앉아 욱신거리는 손끝을 감싸 안고 있노라면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힘든 암흑 속에서도 결국 제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무너지면 수술도, 내일도 없다는 생각에 꽉 찬 눈물을 삼키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통증과 부작용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 시절, 비록 사회와 단절된 채 눈물 바람이었지만 저는 그 열악하고 잔인한 시간 속에서도 기어코 살아남기 위해 하루를 악착같이 버텨냈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 DMCA저작권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infor24.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