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혼자비행 입니다.
앞선 글들에서는 평생 건강을 자부하며 매일 3시간씩 운동했던 제가 통증 없는 혈변을 겪고, 끝내 내과에서 직장암 소견을 듣게 되기까지의 경과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의사의 "큰 병원으로 가라"는 한마디 직후, 제 삶에 찾아왔던 가장 혼란스럽고도 서글펐던 이동의 시간, 그리고 서울 아버지 집으로 향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지방에서의 암 소견, 거대한 서울로 가야 했던 이유
동네 내과에서 대장내시경을 마치고 "대장암 소견이 있으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를 받은 날, 제 머릿속은 온통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추스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하며 홀로 살아가던 지역에는 암 수술이나 정밀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대형 종합병원이 없었습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학병원들이 모여 있는 서울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결정된 서울행이었습니다. 5년 동안 혼자 일하며 단단하게 구축해 두었던 제 일상과 일터는 그 한마디에 완전히 멈춰 서 버렸습니다.
부랴부랴 싸 든 짐가방 하나, 그리고 떠난 집
"우선 서울로 가자." 마음을 먹자마자 저는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느긋하게 입원 준비물을 챙기거나 신변을 정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서울 병원에 예약하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만 급해졌습니다.
장롱을 열고 몇 가지 옷가지와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생필품만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 쑤셔 넣었습니다. 5년 동안 제 피땀과 손때가 묻어 있던 집이었지만, 그날따라 집 안의 풍경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가방 하나를 들고 문을 잠그고 나오는데, '내가 과연 언제쯤 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아득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혼자 살아온 삶이었기에 내 가방을 들어줄 사람도, 나를 배웅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차가운 짐가방 하나만을 든 채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25년을 살아온 작은형 내외, 그리고 서글픈 불편함
서울에서 제가 찾아갈 수 있는 곳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계셨던 '아버지의 집'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제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완벽한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그 집에는 이미 작은형 내외가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버지를 모시며 얹혀살고 있던 터였습니다. 한 공간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자신들만의 생활 방식대로 살아온 형님 내외의 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암 소견을 받고 몸도 마음도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에서, 남의 집이나 다름없는 그곳에 들어가 지내야 한다는 사실은 저를 더욱 죄어왔습니다. 옷가지를 풀고 방 한구석에 짐을 놓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미묘한 어색함과 눈치, 그리고 서글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방에서 혼자 살 때는 내 마음대로 편하게 쉬던 공간이 있었지만, 막상 목숨이 걸린 암 투병을 시작해야 하는 순간에는 내 몸 하나 편히 뉘일 곳조차 마땅치 않다는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의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왔던 밤이었습니다.
마음이 서글퍼도, 살기 위해 견뎌내야 했던 시간들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와 서글픈 마음으로 들어선 아버지의 집이었지만, 저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나를 대신해 병원을 알아봐 주고 챙겨줄 사람이 없는 홀로서기 투병이었기에, 서글퍼하고 슬퍼할 시간마저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작은형 내외가 있는 불편한 집에서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대형병원 진료 예약을 잡고, 피말리는 정밀검사 날짜들을 버텨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도 혹시 지방에 거주하시며 암이나 중증 질환 판정을 받고,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로 외로운 투병 길을 떠나온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이 아픈 와중에 거처 문제나 가족 간의 눈치 때문에 마음까지 상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시작은 짐가방 하나 들고 찾아간 서글프고 불편한 거처였지만, '살아야 한다'는 의지만큼은 그 무엇보다 단단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서울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대형병원 진료를 시작하며 겪었던 정밀검사 과정과 수술을 준비하던 순간들을 계속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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