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혼자비행 입니다.
지난 첫 번째 글에서는 치질인 줄로만 알았던 혈변, 그리고 내과 대장내시경 검사 후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견을 듣게 된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 충격적인 소견서를 손에 쥐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던 발걸음,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가장 괴롭혔던 "내가 이렇게나 건강하게 살았는데 대체 왜?"라는 억울함과 허탈함, 그리고 정밀검사를 받으며 느꼈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관리했는데?" 내 몸을 너무 믿었던 이유
사실 저는 그 누구보다 제 건강에 자신이 있었고,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몸관리에 철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담배는 단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습니다. 물론 홀로 외로움을 달래느라 술은 자주 한잔씩 즐기곤 했지만, 대신 그보다 훨씬 더 혹독하게 내 몸을 단련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했습니다. 일을 일찍 마친 날이면 어김없이 근처 산으로 향했고, 매일 2시간씩 산 정상까지 오르내렸습니다. 그냥 걷는 것도 아니고 산에서 맨발로 운동을 하며 몸의 감각을 깨우고 건강을 다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매일 3시간 이상씩 체육관과 야외에서 혹독하게 몸을 움직였습니다. 단 하루도 운동을 쉬지 않았기에 제 몸은 50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탄탄했고, 체력만큼은 동년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습니다.
'이렇게 매일 3시간씩 운동하고 산을 맨발로 타는데 내 몸에 무슨 큰 병이 생기겠어?'
이 강력한 믿음과 건강에 대한 과신이, 역설적이게도 저를 눈멀게 만들었습니다. 변에 피가 보였을 때도 "내가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암일 리가 없다"며 치질이나 단순 소화기 장애로 지레짐작해 버린 것입니다. 내 몸에 대한 자부심이 오히려 질병의 신호를 가리는 거대한 방패막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내과 소견서를 들고 찾아간 대학병원
동네 내과에서 "대장암(직장암) 소견이 보이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 머릿속을 스친 첫 번째 감정은 공포가 아닌 억울함과 현실 부정이었습니다.
"의사가 잘못 본 게 아닐까? 내가 매일 산에 가고, 밤마다 3시간씩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는데 암이라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내과에서 끊어준 소견서와 내시경 사진을 들고 대학병원 접수처에 서 있는 제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매일 산을 호령하고 탄탄했던 제 육체도, 대학병원 로비의 서늘한 공기 앞에서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가 내시경 사진을 본 대학병원 교수님의 표정은 매우 무거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정확한 병기와 상태를 확인하려면 당장 정밀검사를 진행해야 합니다"라며 CT, MRI, 그리고 조직검사 일정을 잡으셨습니다. 매일 3시간씩 운동하던 건강했던 사내는, 순식간에 수많은 검사 목록을 손에 쥐고 병원 복도를 헤매는 중증 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피말리는 정밀검사의 시간 (조직검사, CT, MRI)
이후 며칠 동안은 그야말로 피말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차디찬 MRI 기계 안에 누워 쿵쿵거리는 기계음을 들을 때, 조영제를 투여받으며 차갑고 묵직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갈 때, 제 마음속에서는 수만 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쳤습니다.
'단단하게 단련된 내 근육도, 맨발로 산을 오르내리며 다졌던 내 체력도, 장 내부에 생긴 혹 하나를 막아주지는 못했구나.'
검사대에 누워 있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강하다고 믿었던 제 자신이었지만, 정밀검사 장비 아래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혹시나 기적이 일어나서 단순 용종이라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또 잡았습니다.
운동이 정기 건강검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정밀검사 결과, 저의 질병은 직장암으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내가 흘렸던 그 수많은 땀방울과 운동했던 시간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뼈아픈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운동과 자기관리는 정말 중요하지만, 그것이 결코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몸 겉면의 근육이 아무리 단단하고 체력이 좋아도, 장 내부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혹과 암세포는 눈으로 볼 수도, 운동으로 털어낼 수도 없습니다. 술을 자주 드시거나 일상에 지쳐 피로를 달고 사시는 분들 중에는 "나는 운동 열심히 하니까 괜찮아", "나는 체력이 좋아서 병 안 걸려"라고 자만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 역시 똑같이 생각했기에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하지만 내 몸에 대한 과신은 가장 위험한 독입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일수록, 오히려 그 건강함을 오래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기적인 대장내시경과 국가 건강검진을 받으셔야 합니다.
운동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결국 '검진'입니다. 절대로 제 지난날처럼 몸을 과신하여 검진 통지서를 무시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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