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활.투병일기

치질인 줄 알았던 혈변: 홀로 견디던 삶 속에서 찾아온 직장암의 신호

안녕하세요. 혼자비행 입니다.

오늘은 제 삶에서 가장 충격적이었고, 한편으로는 제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그날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단순히 개인의 아픈 기억을 꺼내어 놓는 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쁜 일상 때문에, 혹은 스스로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건강검진을 미루고 계신 분들에게 바치는 작은 경종이자 당부입니다.

 홀로 시작한 삶, 그리고 "절대 아프면 안 된다"는 중압감

약 8년 전, 저는 아이들 엄마와 이혼이라는 큰 삶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되었지만, 가장으로서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제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혼 후 저는 기존의 연고지를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했기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스스로 일하며 버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일을 해왔습니다. 1인 자영업자나 다름없는 혼자만의 일터에서 저를 늘 짓눌렀던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내가 아프거나 무너지면 이 모든 삶이 끝난다. 나 혼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된다.'

아이들이 다 컸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혼자 삶을 꾸려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압박감은 날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 책임감은 역설적이게도 저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프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던 탓에, 나라에서 매년 나오는 국가 건강검진 통지서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막상 검사를 받았다가 큰 병이라도 나올까 봐 무서웠고, 당장 하루라도 일을 쉬면 안 된다는 핑계로 건강검진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화근이 될지, 당시의 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첫 번째 신호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화장실에 갔을 때였습니다. 변을 보고 난 뒤 무심코 변기를 내려다보았는데, 변에 빨가스름한 피기가 살짝 묻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저는 곧바로 제 마음을 안심시켰습니다. '어제 매운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내가 뭘 잘못 먹었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피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저는 역시 아무 일도 아니었다며 까마득히 잊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몸이 보낸 신호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다음 주, 또다시 변에 피가 살짝 묻어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피를 보자 덜컥 겁이 났지만, 이번에도 저는 상황을 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했습니다. 흔히 성인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치질'일 거라 스스로 단정한 것입니다.

결국 근처 항문외과를 찾아가 검사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의사 선생님께서도 증상을 들으시고는 치질 소견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며 안도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암 같은 큰 병일 리가 없지. 그냥 치질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렇게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결정적 순간: 통증 없이 떨어진 피와 대장내시경

하지만 치질 약을 먹고 안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에서 피가 나오는 증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찝찝한 마음에 다른 내과도 가보고 여러 진료를 받아보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일어난 뒤였습니다. 항문에 아무런 통증도 없었고, 배에 힘을 주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앉자마자, 항문에서 피가 뚝,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변기 물이 순식간에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그 공포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통증 하나 없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황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 신호였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저는 부랴부랴 근처 내과로 달려가 대장내시경 검사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내시경 검사가 끝난 뒤, 모니터를 바라보던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대장암(직장암) 소견이 보입니다. 소견서를 써드릴 테니, 망설이지 마시고 지금 당장 큰 대학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으십시오."

의사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제 세상을 지탱하던 모든 벽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5년 동안 혼자 일하며 아프지 않으려고 애썼던 시간들, 건강검진을 무시했던 과거의 내 자신, 그리고 치질이라고 믿고 싶었던 수많은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홀로 삶을 일궈나가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이렇게 저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직장암 소견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피를 처음 보았던 그 순간으로, 아니 나라에서 건강검진 통지서가 날아왔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제 자신을 억지로라도 병원에 밀어 넣고 싶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도 저처럼 홀로 삶을 일궈내느라, 혹은 가정을 책임지느라 정기 건강검진을 미루고 계신 분들이 분명 계실 것입니다. "나는 괜찮겠지", "바쁘니까 다음에 받지 뭐", "막상 검사받았다가 무서운 소리 들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저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검진을 미루는 것은 병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병을 키우는 가장 위험한 행동입니다. 특히 항문 통증이 없더라도 변에 피가 묻어나온다면 절대로 치질이나 단순 소화 장애로 넘겨짚지 마십시오. 대장내시경은 여러분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절대 무시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나라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과 필요한 검사를 받으시길 진심으로 당부드립니다. 건강해야만 우리가 지키고 싶은 일상도, 가족도, 혼자만의 삶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 DMCA저작권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infor24.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