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혼자비행입니다.
퇴원 후 몇 달 동안 집에서 통증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교수님께서 처방해 주신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며 시간을 보냈고, 달력만 바라보며 다시 병원에 가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외래 진료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CT 촬영과 X-ray, 피검사까지 다시 진행했습니다.
검사를 받는 동안에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치료가 효과가 있었을까?'
'암은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을까?'
결과를 듣기 전까지는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힘들었던 치료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CT 영상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제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힘드셨죠."
"그래도 암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마음속에 있던 큰 돌 하나가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겪었던 극심한 통증과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제 남은 암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수술 날짜를 잡게 된 것입니다.
긴 터널 끝에서 작은 희망을 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당시 의료계는 여러 이유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수술 일정도 평소처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겼습니다.
제가 믿고 치료를 받아왔던 담당 교수님의 해외 학술대회 일정과 제 수술 일정이 겹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담당 교수님의 미안한 마음
교수님께서는 제게 많이 미안해하셨습니다.
"저도 직접 수술을 해드리고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정이 겹쳐 어쩔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시면서 본인이 가장 신뢰하는 서울대병원 선배 교수님께 직접 의뢰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교수님의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끝까지 환자를 생각해 주시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마음 한편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믿었던 담당 교수님이 바뀐다는 두려움
저는 원래 무언가를 결정할 때 꼼꼼하게 알아보는 성격입니다.
병원을 선택할 때도 여러 병원을 비교했고,
담당 교수님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이 교수님이라면 제 몸을 맡겨도 되겠다.'
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수술을 앞두고 담당 교수님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서울대병원 선배 교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믿고 치료를 받아왔던 담당 교수님께 수술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멀고 낯선 병원, 그리고 혼자라는 현실
수술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병원은 제가 살던 곳에서 꽤 먼 거리였습니다.
몸도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먼 길을 오가야 한다는 것부터 걱정이었습니다.
입원을 하려면 필요한 짐도 챙겨야 했습니다.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 필요한 서류와 개인 물품까지 하나하나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준비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짐을 들어줄 사람도,
"이건 내가 챙겨줄게."
라고 말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혼자 해야 했습니다.
수술보다 먼저 걱정된 것은,
그 긴 과정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언제나 제 편이 되어준 사람
그런 시간 속에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를 걱정해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든여섯 살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전화를 하셨습니다.
"몸은 좀 어떠냐."
"밥은 먹었냐."
"무리하지 마라."
짧은 통화였지만,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늘 걱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면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20대 때 제가 큰 잘못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혼이 날 줄 알았던 저는 아버지를 따라 공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저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제 어깨에 손을 올리시고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날 저는 말보다 행동이 더 큰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참교육이라는 것은 큰소리나 매가 아니라,
묵묵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날 아버지에게 배웠습니다.
지금도 그날 공원을 함께 걷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원래는 제가 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할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아픈 아들을 걱정하며 매일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이 저려왔습니다.
언제나 제 편이 되어준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께 너무 고맙고, 또 너무 미안했습니다.
이제는 수술을 받을 차례였습니다
담당 교수님이 바뀌는 아쉬움도 있었고,
혼자 먼 병원으로 향해야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버텨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제게 남은 것은 수술을 믿고 잘 받아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한 번의 큰 관문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이야기
드디어 수술을 위해 다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앞둔 병실에서의 하루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긴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잠을 청하려 해도 쉽게 잠들 수 없었고, 수술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직장암 수술을 위해 다시 입원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저작권 안내
본 글은 혼자비행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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