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혼자비행입니다.
응급 입원과 치료를 마친 뒤,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분들은 퇴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병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퇴원은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통증은 여전히 제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처방해 주신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고, 수술 날짜가 정해질 때까지는 그 시간을 견디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게는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혼자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늘 곁에 있었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정해진 시간마다 치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은 달랐습니다.
아프다고 해서 누군가가 대신 밥을 챙겨주는 것도 아니었고,
약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습니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들었지만,
혼자라는 현실이 더 크게 다가오는 날도 많았습니다.
혼자 밥을 챙겨 먹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생각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식사였습니다.
예전의 저는 요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음식 장사도 여러 번 했고,
김치를 직접 담그고, 깍두기도 담가 먹을 정도로 요리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따뜻한 집밥을 만들어 먹는 일이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병이 생긴 뒤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들었고,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쿠팡에서 냉동 음식을 주문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것이 대부분의 식사가 되었습니다.
배는 채울 수 있었지만,
예전처럼 직접 만든 따뜻한 음식 한 끼를 먹는 행복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운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끔 밖으로 나가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래 걷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항문이 아래로 계속 당겨지고 가라앉는 듯한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그 통증이 오면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멀리 나가는 것은 포기하고,
집 근처를 천천히 한 바퀴 도는 것이 하루 운동의 전부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걸었을 거리였는데,
그때의 저에게는 그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잡생각이 시작됐습니다
밖에 오래 나갈 수도 없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으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수술은 잘될까.
암은 더 커지는 건 아닐까.
다시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럴수록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음악과 영화가 하루를 버티게 해 주었습니다
잡생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제가 선택한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조용히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영화도 자주 봤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병원도,
통증도,
수술도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제 마음을 조금은 쉬게 해 주었습니다.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병이 생기기 전부터 작은 습관 하나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을 나가기 전,
차에 시동을 걸어 놓고 혼자 박수를 치며 일부러 크게 웃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그렇게 웃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이 생긴 뒤에도 우울함에만 빠져 있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일부러 코미디 프로그램을 찾아보며 한 번이라도 더 웃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크게 웃지 못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은 제게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까지 무너지게 두지는 말자.'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기다림이었습니다
시간은 참 느리게 흘렀습니다.
달력을 보며 외래 진료 날짜를 기다리고,
다시 병원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은 수술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제게는 수술을 기다리던 그 몇 달의 시간이 더 길고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몸도 아팠지만,
마음도 참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버티며 저는 하루하루를 살아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교수님을 만나러 병원으로 향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다음 이야기
몇 달 만에 다시 만난 교수님은 CT 결과를 조용히 보여 주셨습니다.
다행히 힘들게 견뎌낸 치료는 헛되지 않았고, 암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수술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변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직장암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저작권 안내
본 글은 혼자비행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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